Art Library Desk Session 01
기억의 불안정성/불완전성 - 최서희 작가 (Seohee Choi - Artist)
Words from the artist (작가의 이런저런 생각)
1.
이미 지나온 시간임에도 매순간 새로 쓰이는 기억
그것을 짊어진 채 감각하는 현재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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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평한 잔상과 입체적 실재, 그리고 언어의 흔적이 함께 놓인 전시를 열었다. 이것들은 각기 다른 시간의 층위를 지난다. 나는 전시 동선을 따라 거닐며 이 세 매체가 생성하는 시간적 격차를 물리적으로 횡단해보길 바랐다. 설령 무엇이 실제의 시간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지라도, 신체는 지체 없이 다음의 시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중심축을 잃은 채 놓인 기억의 흔적들과 별개로, 물리적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는 사실을 잊고 싶지 않았다.
2.
망점의 시간이 바람과 함께 흘러야만 하는 이유
망점 사이로 바람이 불어오는 것만 같았다. 틈새로 잉크가 새어들어가 너머의 표면에 이미지를 남긴다. 바로 실크판을 세척할 수 있으면 너무 좋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 잉크를 굳힐 수 밖에 없었다. 틈은 막혔고, 바람도 불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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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점의 시간은 그곳과 이곳을 넘나들었다. 잉크와 바람. 목소리와 장면. 물기와 손 끝의 힘. 틈새를 오가며 작업은 무사히 진행되었고, 이미지(사실은 망점의 집합체)는 벽에 남게 되었다. 물론 전시가 끝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만, 적어도 한 달동안은 그곳에 머무를 것이다. 망점 사이로 바람이 불어왔다는 증거가 남아있는 것이다.
나는 망점 사이로 바람이 불었다는 사실에 꽤 의미부여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스스로 알지 못했지만, 지금 어렴풋이 느끼기로 ‘약간의 숨통이 있어야만 너머에 도달한다’는 사실이 좋은 것이다. 나는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기억에 발목이 붙잡혀 있었다. 기억이 상기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숨통이 트여야 상기되는 이미지는 왠지 어쩔 수 없는 느낌이 아니었다. 설령 떠올리기 싫은 것일지라도 그것이 선선한 바람과 함께 넘어온다면, 기꺼이 받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고통의 본질을 온전히 보존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다. 그것은 고통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타인에게 말함으로써, 세상에 공론화함으로써 해소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 안에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상태에서도 스스로 안전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투마킨은 고통을 말하지 않는다고 하여, 사안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 하다. 말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도 괜찮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상태에 다다른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받아들임의 상태에서도 안전한 것은 아마도 고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내 삶의 일부로 배치하는 문제일 것이다. 마치 미술에서 작품의 위치를 정하듯, 고통이라는 덩어리를 내 의식의 중심이 아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빛과 각도가 닿는 곳에 놓아두는 과정인 것이다.
기억의 불안정성/불완전성 - 최서희 작가 (Seohee Choi - Artist)
Words from the artist (작가의 이런저런 생각)
1.
이미 지나온 시간임에도 매순간 새로 쓰이는 기억
그것을 짊어진 채 감각하는 현재의 시간

평평한 잔상과 입체적 실재, 그리고 언어의 흔적이 함께 놓인 전시를 열었다. 이것들은 각기 다른 시간의 층위를 지난다. 나는 전시 동선을 따라 거닐며 이 세 매체가 생성하는 시간적 격차를 물리적으로 횡단해보길 바랐다. 설령 무엇이 실제의 시간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지라도, 신체는 지체 없이 다음의 시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중심축을 잃은 채 놓인 기억의 흔적들과 별개로, 물리적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는 사실을 잊고 싶지 않았다.
2.
망점의 시간이 바람과 함께 흘러야만 하는 이유
망점 사이로 바람이 불어오는 것만 같았다. 틈새로 잉크가 새어들어가 너머의 표면에 이미지를 남긴다. 바로 실크판을 세척할 수 있으면 너무 좋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 잉크를 굳힐 수 밖에 없었다. 틈은 막혔고, 바람도 불어오지 않았다.

망점의 시간은 그곳과 이곳을 넘나들었다. 잉크와 바람. 목소리와 장면. 물기와 손 끝의 힘. 틈새를 오가며 작업은 무사히 진행되었고, 이미지(사실은 망점의 집합체)는 벽에 남게 되었다. 물론 전시가 끝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만, 적어도 한 달동안은 그곳에 머무를 것이다. 망점 사이로 바람이 불어왔다는 증거가 남아있는 것이다.
나는 망점 사이로 바람이 불었다는 사실에 꽤 의미부여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스스로 알지 못했지만, 지금 어렴풋이 느끼기로 ‘약간의 숨통이 있어야만 너머에 도달한다’는 사실이 좋은 것이다. 나는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기억에 발목이 붙잡혀 있었다. 기억이 상기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숨통이 트여야 상기되는 이미지는 왠지 어쩔 수 없는 느낌이 아니었다. 설령 떠올리기 싫은 것일지라도 그것이 선선한 바람과 함께 넘어온다면, 기꺼이 받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고통의 본질을 온전히 보존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다. 그것은 고통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타인에게 말함으로써, 세상에 공론화함으로써 해소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 안에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상태에서도 스스로 안전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투마킨은 고통을 말하지 않는다고 하여, 사안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 하다. 말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도 괜찮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상태에 다다른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받아들임의 상태에서도 안전한 것은 아마도 고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내 삶의 일부로 배치하는 문제일 것이다. 마치 미술에서 작품의 위치를 정하듯, 고통이라는 덩어리를 내 의식의 중심이 아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빛과 각도가 닿는 곳에 놓아두는 과정인 것이다.
“It is still so vivid.
Back then... “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은 기억이 4K 과화질 영상이라면, 그것을 포착하는 언어의 해상도는 낮은 화질의 픽셀 이미지와 닮아 있다.
기억을 언어라는 그릇에 옮겨 담을 때, 사실과 해석, 감정과 감각 같은 구성 요소를 온전히 보존 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도저히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지점들이 존재하며, 때로는 언어로 정의 내리고 깊지 않은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어를 빌려 과거를 정돈하곤 한다.
하루를 마무리 하면 일기를 쓰는 행위 역시 그 과정의 일부일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스스로 중요하다고 믿는 ‘특별한 기억’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해 보고자 한다.
필요하다면 언어가 수단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어떤 것도 표현의 도구가 될 수 있다. 해당 기억에 대해 굳이 말과 글로 구체적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된다.
이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된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꺼내 보이고 싶은 마음’에 대해 고민하게 되면서 부터이다. 특정 기억이 오랜 시간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데에는
그만큼 본질적인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기억은 지금의 못난 모습 혹은 자랑스러운 모습을 빚어내며 스스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을 수 있다.
결국 기억을 꺼내어 놓는다는 것은, 지금의 나를 설명하고 변명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봄을 지나 여름, 그리고 가을의 시간 동안 개인의 깊숙한 기억을 전달받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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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 2026
April 5th
Through October 1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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