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Library Desk Session 01
기억의 불안정성/불완전성 - 최서희 작가 (Seohee Choi - Artist)
Words from the artist (작가의 이런저런 생각)
3.
투마킨의 저서를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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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본질을 온전히 보존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다. 그것은 고통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타인에게 말함으로써, 세상에 공론화함으로써 해소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 안에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상태에서도 스스로 안전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투마킨은 고통을 말하지 않는다고 하여, 사안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 하다. 말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도 괜찮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상태에 다다른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받아들임의 상태에서도 안전한 것은 아마도 고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내 삶의 일부로 배치하는 문제일 것이다. 마치 미술에서 작품의 위치를 정하듯, 고통이라는 덩어리를 내 의식의 중심이 아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빛과 각도가 닿는 곳에 놓아두는 과정인 것이다.
4.
묵묵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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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언니를 따라 그곳으로 들어갔어요.’ 이게 그 여자가 한 진술의 전부였다. 그 다음은 그날 이후 30년의 시간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분명 여자의 첫 문장은 다음에 이어진 이야기들에 비하면 많은 정보를 담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 첫 문장이 귓가에 맴돈다. 진술의 무게는 그만큼 무거운 것이다.
무게감이 서로 다른 말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너무 가벼워 곧 휘발되는 말부터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 감당이 안되는 말까지. 그 자리에서의 대화는 꽤나 다양한 무게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외상적 기억에 대한 진술로 시작해 의미 없는 농담으로 끝이 나기도 하고, 잠시 쉬어가는 시답지 않은 말들도 있었다. 그 다음은 다시 진지한 진술이 이어지고, 가라앉은 분위기를 풀기 위해 다시금 별거 아닌 말이 내뱉어졌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이자, 스스로를 너무 처연하게 만들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말들을 두서 없이 걸어두고 싶었다. 그리고 너무 축 늘어지지도, 그렇다고 너무 바트지도 않게, 한 장 한 장 쓰여있는 문장들을 상상했다. 큰 동요 없이 묵묵히 이어지던 대화의 분위기가 기억난다. 분명 꾸역꾸역은 아니었고, ‘묵묵히’ 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삶을 무너뜨릴 만큼 강렬했던 기억과 그 기억에 대한 담담한 진술 그리고 그것을 그나마 지탱하게 해주는 시시한 농담들. 그 비대칭한 무게의 균형을 맞추며 우리는 대화를 이어갔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비록 두서가 없을지라도 묵묵했던 말들을 기억해 적고 나열하듯 걸어두기로 했다.
기억의 불안정성/불완전성 - 최서희 작가 (Seohee Choi - Artist)
Words from the artist (작가의 이런저런 생각)
3.
투마킨의 저서를 읽으며.

고통의 본질을 온전히 보존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다. 그것은 고통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타인에게 말함으로써, 세상에 공론화함으로써 해소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 안에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상태에서도 스스로 안전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투마킨은 고통을 말하지 않는다고 하여, 사안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 하다. 말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도 괜찮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상태에 다다른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받아들임의 상태에서도 안전한 것은 아마도 고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내 삶의 일부로 배치하는 문제일 것이다. 마치 미술에서 작품의 위치를 정하듯, 고통이라는 덩어리를 내 의식의 중심이 아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빛과 각도가 닿는 곳에 놓아두는 과정인 것이다.
4.
묵묵한 말

‘저는 그날 언니를 따라 그곳으로 들어갔어요.’ 이게 그 여자가 한 진술의 전부였다. 그 다음은 그날 이후 30년의 시간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분명 여자의 첫 문장은 다음에 이어진 이야기들에 비하면 많은 정보를 담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 첫 문장이 귓가에 맴돈다. 진술의 무게는 그만큼 무거운 것이다.
무게감이 서로 다른 말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너무 가벼워 곧 휘발되는 말부터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 감당이 안되는 말까지. 그 자리에서의 대화는 꽤나 다양한 무게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외상적 기억에 대한 진술로 시작해 의미 없는 농담으로 끝이 나기도 하고, 잠시 쉬어가는 시답지 않은 말들도 있었다. 그 다음은 다시 진지한 진술이 이어지고, 가라앉은 분위기를 풀기 위해 다시금 별거 아닌 말이 내뱉어졌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이자, 스스로를 너무 처연하게 만들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말들을 두서 없이 걸어두고 싶었다. 그리고 너무 축 늘어지지도, 그렇다고 너무 바트지도 않게, 한 장 한 장 쓰여있는 문장들을 상상했다. 큰 동요 없이 묵묵히 이어지던 대화의 분위기가 기억난다. 분명 꾸역꾸역은 아니었고, ‘묵묵히’ 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삶을 무너뜨릴 만큼 강렬했던 기억과 그 기억에 대한 담담한 진술 그리고 그것을 그나마 지탱하게 해주는 시시한 농담들. 그 비대칭한 무게의 균형을 맞추며 우리는 대화를 이어갔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비록 두서가 없을지라도 묵묵했던 말들을 기억해 적고 나열하듯 걸어두기로 했다.
“It is still so vivid.
Back then... “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은 기억이 4K 과화질 영상이라면, 그것을 포착하는 언어의 해상도는 낮은 화질의 픽셀 이미지와 닮아 있다.
기억을 언어라는 그릇에 옮겨 담을 때, 사실과 해석, 감정과 감각 같은 구성 요소를 온전히 보존 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도저히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지점들이 존재하며, 때로는 언어로 정의 내리고 깊지 않은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어를 빌려 과거를 정돈하곤 한다.
하루를 마무리 하면 일기를 쓰는 행위 역시 그 과정의 일부일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스스로 중요하다고 믿는 ‘특별한 기억’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해 보고자 한다.
필요하다면 언어가 수단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어떤 것도 표현의 도구가 될 수 있다. 해당 기억에 대해 굳이 말과 글로 구체적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된다.
이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된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꺼내 보이고 싶은 마음’에 대해 고민하게 되면서 부터이다. 특정 기억이 오랜 시간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데에는
그만큼 본질적인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기억은 지금의 못난 모습 혹은 자랑스러운 모습을 빚어내며 스스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을 수 있다.
결국 기억을 꺼내어 놓는다는 것은, 지금의 나를 설명하고 변명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봄을 지나 여름, 그리고 가을의 시간 동안 개인의 깊숙한 기억을 전달받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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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 2026
April 5th
Through October 1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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